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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를 얼마나 읽어보았는가라고 물어본다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태엽 감는 새 연대기> 정도이다. 그 유명한 <노르웨이의 숲>을 읽어 보지 못했는데, 언젠가는 읽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의 다작을 읽기도 전에 이 책을 손에 잡은 이유가 있다. 얼마전 읽었던 김동조의 <[리뷰] 모두 같은 달을 보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꾼다 - 김동조 마켓일기>를 읽다가, 이 책이 언급되었고 그 순간 지금까지 다양한 일을 해오면서도 내 직업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점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입버릇처럼 재미난 일이라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어떤 직업의 길을 걷고 있는 내가 얼마나 내 직업에 대해서 얼마나 표면적으로만 생각하고 있는지를 돌이키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와는 다른 직업이지만 세계적인 반열에 올라 있는 사람은 자신의 직업과 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

 

이 책은 하루키가 1979년 등단 이후 최초로 자신의 작가론적, 문단론적, 문예론적 견해를 풀어놓은 책이라고 한다. 하루키의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와 관련된 글들은 심심치 않게 접해서 알고 있었던 것이 많았는데 이 소설을 통해서 이 사람의 삶과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어서 기뻤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Murakami Haruki

이 책은 그가 문학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땐 계기로 소설가가 되었는지, 그리고 이후에 어떻게 그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유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삶의 기준을 세우고 규칙적으로 지켜내가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중간 중간 단조로운 부분이 생길 때 즈음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등장하기 때문에 약간 늘어질 때 다시 재미있게 읽고, 늘어질 때 다시 재미있게 읽게 되는 책이었다. (과거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는 혹평을 남긴 적이 있다).

 

책을 덮으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책이 무엇보다 가치 있게 느껴진 지점은 소설과 소설가라는 단어를 일과 직업으로 대체하였을 때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보편적인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가 책에서 언급하듯이 이게 기준이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살아오면서 소설가로서 하고 싶은 소설을 계속 쓰기 위해서, 또 무언가 꾸준히 자기 색을 내면서 잘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의미 있는 교훈을 준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혼자 대화를 많이 했다. 내가 언젠가 신사업을 기획하고 운영한다는 업무에 대해서, 그리고 데이터를 분석한다는 일에 대해서 정리하면서 글을 쓴다면 나는 어떤 내용들을 쓰게 될까? 데이터 분석을 잘하기 위해서, 혹은 특정한 타겟들의 욕구를 잘 캐치해서 상품기획을 잘하는 것에 대해서 과연 타인에게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하시길 바란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기획하고 만들어가고 있는 서비스와 상품들에 대해서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더 잘하기 위해서, 더 오랫동안 잘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어떤 삶의 규칙을 만들어나가야 할까.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점

오리지낼리티

내 생각에는 이렇다는 얘기입니다만, 특정한 표현자를 ‘오리지널’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조건이 채워져야 합니다.

(1). 다른 표현자와는 명백히 다른 독자적인 스타일(사운드든 문체든 형식이든 색채든)을 갖고 있다. 잠깐 보면(들으면) 그 사람의 표현이라고(대체적으로)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2). 그 스타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버전 업 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의 경과와 함께 그 스타일은 성장해간다. 언제까지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그런 자발적, 내재적인 자기혁신력을 갖고 있다.

(3). 그 독자적인 스타일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일반화하고 사람들의 정신에 흡수되어 가치판단 기준의 일부로 편입되어야 한다. 혹은 다음 세대의 표현자의 풍부한 인용원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p.97-98,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많이 읽을 것, 그리고 관찰할 것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고,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습관이 필요한 지에 관해 하루키가 소개하는 의견은 명료하다. 많이 읽고, 많이 관찰하라는 것이다. 책의 초반부터 그는 지속적으로 언급한다. 30대 초까지 재즈바를 운영하면서 아무리 삶이 힘들고, 버거웠어도 틈틈히 책을 읽는 것을 놓지 않았다는 것과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꾸준히 책을 읽었다는 것이 소설가로서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책이 너무 좋아서 읽었다는 천성적인 면에서 다른 사람들과 습관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보편적으로 어떤 일이든 잘하려고 할 때 많이 읽고 관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다만 하루키는 그것을 자신의 직업에서 어떻게 잘 활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다음에 할 일은-아마 실제로 내 손으로 글을 써보는 것보다 먼저-자신이 보는 사물이나 사상을 아무튼 세세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붙이는 것이 아닐까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어찌됐건 찬찬히 주의 깊게 관찰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이래저래 생각을 굴려본다. 하지만 생각을 굴려본다라고 해도, 그 일의 시시비비나 가치에 대해 조급하게 판단을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결론 같은 건 최대한 유보해서 뒤로 미루도록 합니다. 중요한 것은 명쾌한 결론을 내리는 게 아니라 그 일의 원래 모습을 소재로서 최대한 현상에 가까운 형태로 머릿속에 생생하게 담아두는 것입니다. (...)

 '만일 당신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주위를 주의 깊게 둘러보십시오' – 라는 것이 이번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세계는 따분하고 시시한 듯 보이면서도 실로 수많은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원석이 가득합니다. 소설가란 그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멋진 것은 그런 게 기본적으로 공짜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올바른 한 쌍의 눈만 갖고 있다면 그런 귀중한 원석은 무엇이든 선택 무제한, 채집 무제한입니다.

 

 

 

규칙성의 중요성

하루키의 글 보면서 '이건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로 생각하고 꾸준히 규칙적으로 해본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그는 장기적인 일을 할 때 규칙성이 정말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은 타임카드를 찍듯이 하루에 거의 정확하게 20매의 원고를 쓴다고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4~5시간 책상을 마주하고 묵묵히 원고를 쓴다고 한다. 그 긴 시간을 규칙적으로 이렇게 글을 써내리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나는 한 가지 일을 얼마나 일상의 루틴에서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있을까? 대부분 무언가를 할 때 정말 길면 3개월 정도 꾸준히 하는 것 같다. 3개월도 짧지 않은 기간이지만, 대부분 3개월 후에 포기할 때 나는 규칙적으로 꾸준히 3개월을 해보았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그만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말 길었던 규칙 적인 생활이 하나 기억나는데 대학생 때 영어를 3년간 매일매일 등하교길에 들었던 일이다. 정말 하루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 같아서 그냥 묵묵히 했었는데, 그 시간에 쌓인 언어적 능력이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게 해준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 그 의미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 채 우선 이 달리는 습관은 끈질기게 유지했습니다. 삼십년 이라면 상당히 긴 세월입니다. 그만한 세월 동안 줄곧 한 가지 습관을 변함없이 유지하려면 역시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가. 달린다는 행위가 ‘내가 이번 인생에서 꼭 해야 할일’의 내용을 구체적이고 간결하게 표상하는 듯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대략적인, 하지만 강력한 실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몸이 안 좋아. 별로 달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이건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라고 나 자신에게 되뇌면서, 이래저래 따질 것 없이 그냥 달렸습니다. 그 문구는 지금도 나에게 일종의 만트라 주문처럼 남아 있습니다. 이건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라는 것.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국내도서
저자 : 무라카미 하루키(Haruki Murakami) / 양윤옥역
출판 : 현대문학 201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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