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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업무로 일을 해본 것 같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모든 업무는 무언가를 기획하고 분석하고 실행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현재의 나는 우리나라에서 상당히 큰 모 스타트업에서 신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말이 좋아서 신사업 기획이지 사실은 시장 조사부터 공급자 모집 기획, 모집, 관리, 운영까지 닥치는대로 일이 필요하면 그냥 한다.
사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지만, 그 전후로 비약적으로 성장한 두 번의 스타트업을 거쳤고 이제는 거대한 스타트업에서 신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요즘은 고민이 참 많다. 다름이 아니라 주변을 보면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똑똑한 사람들의 바보같은 선택들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개똥철학 때문일 수도 있겠다.
1. 조직
신사업 기획에는 귀는 열려 있지만, 성공에 집착할 수 있는 선장이 필요하다. 단순한 organizer가 아니라 captain으로 이 사업에 애정을 가지고 누군가 강력하게 방향을 이끌어갈 사람이 필요하다. 이끌어가는 구심점이 없을 때 많은 이들이 열심히 각자의 방향을 향해 헤엄친다. 이런 captain은 똑똑함의 정도 보다는 경험과 포용력이 중요한 것 같다. 경험이 부족하지만 똑똑하기 때문에, 좋은 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짧은 경력에도 방향키를 맡겨본다는 생각은 정말 위험한 것 같다.
2. 비지니스 모델
안정화되고 이익율을 개선해야 하는 시점에서 나는 늘 이상한 비지니스 모델(BM)을 마주한다. 대체적으로 그 비지니스 모델은 고객이나 회사의 가치를 반영하지 않는다. 우리보다 앞선 국내외 스타트업이 그 방식으로 점유율을 확대하였고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벤치마킹을 많이 한다. 심지어 그 모델로 10년 째 그 회사가 적자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마음에 두지 않는 것 같다.
마케팅 비용으로 생각하자. 우리는 플랫폼이니까 유저 유입이 더 중요하다라는 말은 정말 예전 말이다. 2013~4년에 우리나라가 맞이 했던 제2의 스타트업 열풍의 한 가운데서 목격했었다. 일단 무엇이든 테스트를 해야하고 무엇이든 화제를 몰고 왔어야 했다. 그런식으로 돈이 벌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많은 투자자들의 자본에 기생해 허울 좋은 비즈니스 시도들은 꽃피웠다. 언제든지 피벗(pivot)을 통해서 소비자의 가려운 곳을 우연히라도 긁어내면 된다고? 현재 우리 주변에 그 회사들 중에 남아 있는 회사는 몇 군데나 되는가? 심지어 해외 유니콘 마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지 않는가?
3. 가설 검증
가설과 핵심 질문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핵심 질문이라는 것은 열린 방향으로 사업 방향에 대해서 오픈형 고민을 하는 것이다. 반대로 가설은 이미 철저한 고민과 분석 속에서 내가 만든 혹은 만들 제품과 서비스를 가지고 시장에서 실제 그런한가를 검증하기 위한 하나의 닫힌 문장이다. 하나의 사업을 위해 검증해야할 요소가 너무나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고객에게 묻기 위한 질문을 제작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FGI는 검증을 위한 재료이지, 검증의 답이 아니다.
고객이 정말 자신의 욕구를 안다고 생각하지 말자. 특히 이런거 있으면 써볼 것 같아요? 점수로 주면 몇점 정도로 평가하시겠어요?와 같은 바보같은 질문을 2020년에도 하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충격이다. FGI로는 그들의 관련 경험이나 이야기를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 원하는 답을 받으려고 고객이 답해주는 것에 집착 하는 것은 보고를 위한 조사지 사업을 위한 조사가 아니다.
4. 학습
사업을 진행하며 학습하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어느 날, 여러 팀원들이 특정 주제에 관해 조사를 하고 자료를 가져왔는데 다들 똑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다. 대부분 비슷한 출처에서 비슷한 것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방법론 다양한 케이스스터디, 논문 등 이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현상을 뒷받침하고 새로운 것을 주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하는 것은 나를 성장시키고 신사업을 정말 '신'사업으로 만든다.
슬랙을 뒤져보니 다른 팀에서 진행한 벤치마킹도 있다. 읽어보면 대부분 비슷하다. 이는 슬랙의 장점이다. 이 순간 아 이 조직의 키를 잡고 움직이는 사람은 여기서도 벤치마킹을 받았는데, 저기서도 또 시켰었구나. 동일한 내용과 동일한 insight에도 화조차 내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에 그가 무엇을 위해 벤치마킹을 하는지 잊고 있음을 깨달았다.
신사업을 하면서는 조직적인 학습이 필요하다. A라는 곳이 실패를 했다면, 그 실패를 같은 조직 내 다른 팀인 B라는 곳에서는 같은 실패를 안해야 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실 오늘 특히 이런 고민이 많았다. 동일한 서비스를 준비하는데 이전에 6개월 동안 누구도 DB를 까보지 않아서 실패했던 내용에 대해서 내가 지적하고 보완해야 한다했던 부분이, 다른 팀에서 전혀 반영되어 있지도 문제의식도 없었다. 도구는 조직을 유기적인 생물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 활용되어야 한다.
정리하며...
지금 있는 회사에 와서 나는 회사원으로서 혹은 곧 얼마후의 사업가로서 내 가치를 스스로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아무리 똑똑해 보이는 척 하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본질적인 가치에 집중하지 않는다. 특히 내가 몇 개월간 관찰한 공대생 임원들이 바라보는 시장은 정답이 있는 세상이고, 전략적으로 잘 접근하여, 적절한 전술을 사용하면 우리는 고객의 소구점이라는 정답을 반드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들은 정말 인문학적 사고와 철학적 사고가 떨어진다고 말하고 싶다.
성공하는 신사업과 망하는 신사업의 차이는 늘 종이 한장의 차이다. 사업을 되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고민을 많이 한다고 자랑했던 임원보다는 진심으로 안될 수밖에 없는 요소를 걱정하며 흥분하는 직원이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데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그 목소리에 모두가 우울해져 사업에 대한 의지를 잃으면 안되겠지만...
또, 결과를 논하기 전에 우리가 정말 제대로 검증했는지 고민해야 한다. 내가 해야만해서 혹은 내가 상상속에서 바라는 소구 포인트의 창작이 아니라 정말 사회 속에 그러한 수요가 있는지 냉철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것이 가설을 세우기 위한 기본 전제 조건이다. 또한 그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없는 실체와 욕구를 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보고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속여가며 그럴듯하게 만들어내지 않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요즘 생각하는 점 중 하나가 이런 것이다. 기획자는 좀 나름 놀아본 사람이 좋은 것 같다. 이 말은 그들이 다양한 제품이나 서비스, 놀이, 문화에 오픈된 마인드로 감히 경험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분석적인 접근 말고 마음으로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의 실제 고객들이 wow 외친 포인트를 잡아낼 수 있는 접근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재미있게 놀아본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공부만 실컷 열심히 잘했던 논리적 헛똑똑이들 보다는 정말 사람들이 무엇에 열광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에 만족감을 느끼는 지를 마음으로 공감하고 이에 집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신사업 팀에는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이 사소하지만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포인트를 던져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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